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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교 조루리/분라쿠[ 人形浄瑠璃/文楽 ]

노(能), 가부키(歌舞伎)와 더불어 일본 3대 전통극의 하나로 근세초에 성립된 서민을 위한 인형극이다. 근자에는 분라쿠(文楽)라고도 불리운다.


중세부터 조루리라는 서사적인 노래 이야기가 있어 서민들 사이에 유행하였는데, 여기에 재래의 인형극이 시각적 요소로 더해지고, 16세기 후반 류큐에서 전래된 샤미센(三味線)이 반주악기가 됨으로써, 조루리·인형·샤미센에 의한 3자일치의 연극으로 성립되었다.



17세기 중반의 고조루리(古浄瑠璃) 융성기를 지나 겐로쿠(元禄)시기에 조루리를 부르는 다케모토 기다유(竹本義太夫)와 극작가 지카마쓰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의 제휴로 본격적으로 발전한다. 다케모토는 조루리 유파인 기다유부시(義太夫節)를 확립하고, 지카마쓰는 고조루리에서 다루는 영험담이나 전기물 등의 중세적 색채에서 벗어나 봉건사회의 제약과 인간성과의 대립을 주제로 한 근세서민을 위한 작품을 썼다. 그중 의리와 인정사이의 갈등에서 발생하는 비극을 그린 『소네자키 신주』(曾根崎心中)는 유명하다. 18세기 중엽에는 조루리 3대 명작으로 불리는 『가나데혼 주신구라』(仮名手本忠臣蔵)·『스가와라 전수 학문의 귀감』(菅原伝授手習鑑)·『요시쓰네 천그루 벚꽃』(義経千本桜)이 되어 조루리의 황금시대를 맞이한다. 이들 3대 명작은 그대로 가부키화되어 가부키의 명작도 된다. 18세기 후반부터 급격히 쇠퇴하여 가부키에 주도권을 양도하지만, 조루리의 대본, 연출법, 음악성 등이 가부키에 끼친 영향은 커다란 것이었다. 이처럼 가부키와 닌교 조루리는 성립기부터 병행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작자·작품·관객층을 공유하며, 어느 한쪽이 쇠퇴하면 다른 쪽이 융성하는 형태로 번갈아가며 발전을 도모하여 왔다. 19세기 초, 우에무라 분라쿠켄(植村文楽軒)이 오사카에 자신의 이름을 딴 분라쿠좌(文楽座)를 개설하여 조루리의 명맥을 이어갔고, 메이지시대에 분라쿠좌가 융성하게 되면서 닌교조루리의 별칭을 분라쿠라고 부르게 되었다.(최관)[네이버 지식백과] 닌교 조루리/분라쿠 [人形浄瑠璃/文楽]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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