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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최초 노벨문학상 《설국(雪国ゆきぐに, 유키구니)》

《설국(雪国ゆきぐに, 유키구니)》은 일본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소설이다.

가와바타는 이 작품으로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그 내용은 고전무용 비평가인 남자 주인공 시마무라가 북쪽 지방의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의 한 게이샤 고마코, 그리고 고마코의 친구인 동시에 일종의 연적이었던 요코에게 빠져들면서 겪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탐미주의적 색채가 무척 강한 것이 특징이다.



첫 문장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向側の座席から娘が立ってきて、島村の前のガラス窓を落した。

雪の冷気が流れこんだ。

娘は窓いっぱいに乗り出して遠くへ叫ぶように、

「駅長さあん、駅長さあん。」

明りをさげてゆっくり雪を踏んで来た男は、襟巻で鼻の上まで包み、耳に帽子の毛皮を垂れてい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아랫쪽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일어서 다가오더니,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눈의 냉기가 흘러들었다.

여자는 한껏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는 듯이,

"역장니임, 역장니임ー"

등불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고 온 남자는 목도리를 콧등까지 두르고, 귀에 모자의 모피를 드리우고 있었다.


(제7행까지)



해설

카도카와 문고판 《설국》의 뒷부분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노벨문학상을 받는 데 큰 공헌을 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쓴《설국》의 해설이 있다. 이는 본래 사이덴스티커가 영역한 영역본의 서문으로, 본래 영문인 것을 일본에서 일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중역한 것임을 밝히며, 여기엔 일본어에서 한국어로의 번역을 싣는다. 단, 이 번역은 이 단락 추가자가 번역한 것으로 나은 번역이 있다면 수정을 바란다. <>는 달리 번역할 수 있는 말이고, 각주는 일종의 번역노트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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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시베리아로부터 찬 바람이 습기를 머금고 일본해를 건너 온다. 그리고 일본의 산에 부딪혀, 눈이 되어 내린다. 일본의 혼슈 서해안은 그 위도에 있어(하테라스 섬부터 뉴욕, 스페인령 모로코부터 바르셀로나) 대체로 세계에서 가장 눈이 많은 지방이다. 12월부터 4월, 5월 정도까지는 철도만이 겨우 열고 산의 눈은 때로는 15피트에 달한다.

그러므로 '설국'이라는 말도 단순히 눈이 내리는 나라라는 의미가 아니고, 중앙산맥의 서측에 가로누운혼슈의 부분을 특히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긴 겨울, 눈에 파묻힌 터널, 겨울의 화로의 연기에 나무가 검게 된 집들 -- 그리고 아마 동상, 혹은 좀 더 공상적으로 말하면 긴 겨울의 무언가의 달빛 사이, 해가 뜨는 것을 잊은 생활을 의미한다.

온천도 또 일본에서는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인은 우리가 바스나 사라토가에 가는 때와 같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든가 시즌이니까라는 이유로 온천에 가는 일은 그다지 없다. 일본인은 스키도 타면, 단풍이다, 꽃 구경이다라고 말하고 나가지만, 부인을 동반하는 경우는 정말로 없다. 온천 특유의 즐거움은, 처를 동반하지 않고 신사용으로 되어 있는 화려한<번화한> 온천지에, 게이샤나 멋스러운 숙소의 여자 종업원이 없는 곳은 없다.

온천 게이샤는 세상의 빈축을 사지 않는 것 마저, 아마 그것에 가까운 존재다. 도시의 게이샤가 노래나 춤으로 유명해지고, 끝에는 정치의 배후에서 움직이거나, 후원을 끌어 받거나조차 하는 자도 적지 않은데, 온천 게이샤는 주말의 유산객의 아첨꾼으로 붙어서, 끼를 팔고 몸을 팔지 않는 명목도, 어쨌건 외관만으로 끝나는 것을 면치 못한다. 그녀들이 때로 연배의 손님에게 몸을 맡겨, 소요릿집이라도 가지게 해 받는 것 같은 것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온천지에서부터 온천지로 싫다고 하면서도 헤메야 하는 그 숙명이, 무절제된 아룸다움을 그대로 섬세하게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의 여주인공에 온천 게이샤로 하고, 배경에 어두운 설국을 선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두움과 무절제된 아름다움은, 그의 주된 작품의 바닥을 흐르는 기조이다. 《설국》안에서, 우리는 가장 강하게, 가와바타의 세계의 그 차갑디 차가워진 적적함을 느낌에 틀림없다.

1899년, 오사카 근처에서 태어난 가와바타는 2살에 고아가 되었다. 도쿄제국대학 졸업후, 그의 단편은 점차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곧 20년대 후반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의 대항을 표시하는 서정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설국》은 1934년에 기고, 1935년부터 1937년 사이에 연재해 발표되어, 1947년에 마지막 부분이 더해져,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은 소설로 완성되었다.

가와바타는 17세기의 하이쿠 거장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련의 문학체계에 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이쿠는 서로 반대하는, 혹은 조화되지 않는 요소를 조합해서 아름다움의 한 순간의 파악을 전하자고하는 극히 짧은 17자의 시이다. 그리고 고전적인 하이쿠는 움직임과 조용함을 독특하지 않은 방법으로 융합하고 있지만, 가와바타는 대단히 엄격한 감각의 융합에 의존하고 있다. 《설국》을 읽으면, 이를테면 겨울 밤의 정숙함에 의도치 않게 엄습당해, 시내의 흐름의 얕은 여울의 둥근 달콤함에서 합류점, 혹은 협력한 예시를 들면, 차 끓이개<찻주전자>에서 끓는 소리가 어느 사이엔가 여자의 발소리로 바뀐다. 이 회화의 훌륭한 점 등에서는 일본의 고전에서의 회화가 단시의 주고 받음에서 나아가는 것처럼, 짧은 글이 때로는 2가지 이상의 뜻을 가진 말이, 설명문으로 주고 받게 되어 간다.

이러한 하이쿠적인 방법은, 소설에 있어서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하이쿠는 인정의 세계에 길게 머무를 수 없고, 하이쿠의 거장 바쇼의 작품은 인정에 오히려 차가운 엄격함으로 대하고있다. 그러니까 그 하이쿠 정신을 이은 소설가는 잠자리를 같이하는 여가를 묘사하는 때 보다도, 겨울의 별을 말하는 때에 부드러운 말이 끌리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영국의 소설이 지드를 좋아하게 했던 것처럼, '몸집만 큰 촌스러운 남자'나 '피 비린내 나는 기호'를 그에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의 소설은 오히려 공허 안에서 점멸하는 짧은 일련의 번쩍임과 비슷하다. 등장인물은 마침내 사라져 가는 하나하나의 섬광으로서 나타내어지며, 그 배후엔 다음의 번쩍임<번뜩임>도 단지 허무함을 보일 뿐이라는 암시를 남기고 간다. 《설국》의 주인공이 여주인공으로부터 결별한 후, 다시 그 얼굴을 생각해 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의미가 깊다<깊은 의미가 있다>.

이것은 하이쿠와 소설이 전혀 양립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설국》에서, 가와바타는 이 두 개가 양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테마를 선택했다.

그 소설은 인간관계라는 것은 결국 차가운 비정한 것이라는 것, 모든 인간의 감정은 자신을 배신하는 것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주인공은 정말로 연애할 수 없는 부자 디렉턴트이고, 온천 게이샤인 여주인공은 타락한 중에 있으면서 또한 순진함을 잃지 않는다고 하지만, 독자의 눈에는 어째도 퇴폐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려고 하지만 사랑은 두 사람을 이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떨어지고 만다. 주인공인 시마무라는 자기 안의 반은 시니컬하고 반은 희망적인 꿈의 세계를 만든다. 그곳에는 육체와 피를 암시하는 어떤 것도 없다고 해도 좋다. 그는 발레 전문가이지만, 발레를 본 적이 없다. 그의 앞에서 발레를 춰 보이면, 그는 눈을 감지 않을까, 생각된다. 게이샤인 고마코와의 연애는 처음부터 파국이 선고되어 있다. 그녀를 통해 그는 느낌이 다른 강열한 아가씨, 요코를 안다. 가와바타의 심상 가운데, 요코는 산의 어둠에서 번쩍일 한 점의 빛이다. 그러나 시마무라는 고마코에게도 요코에게도, 인간으로서 끌어당겨지지 않는다. 이리하여 곧 그는 가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안다.

고마코에게는 아직 꿈이라는 것이 없다. "좋은 아이네" -- 소설의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시마무라는 상냥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 후에, 그가 아무 기척 없이<담담히> "좋은 여자야"라고 말을 바꾼 때, 그녀는 이제까지 이용당했던 자신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녀도 또, 곧 남자는 자신을 버리고 갈 것이라는 것을 안다. 말의 정말 사소한 차이가, 이정도로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는 소설은, 나는 달리 알지 못한다.

마지막의 정경은 단지 될 대로 되었을 뿐이다. 고마코가 요코를 안고, 타는 고치창고로부터 비틀거리며 나올 때, 고마코와 시마무라는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 독자도 안다<이해한다>. 시마무라는 도회로 돌아가서 그 차가운 디렉턴트를 계속 연기할 것이며, 고마코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요코를 과해진 무거운 짐으로서, 이 산의 온천 마을에서 몸을 망쳐갈 것이다. 이것들에 있어서 아무것도 설명되어 있지 않다. 요코가 소설의 끝에서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약 마지막 수 페이지에서 당황함을 기억한다면, 이미 모든 것이 말해져있다는 것을 기억해내야 한다. 이 소설은, 실제로는 시마무라가 끓이개<찻주전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곳에서 끝나있다. 화재 장면은 아무리 아름답게 묘사되어있다고 해도, 이미 쓰인 것의 강조에 불과한 것이다.

《설국》은 아마 가와바타의 걸작일 것이다. 그는 시마무라와 고마코와의 연애에, 사랑의 부정을 캐물어서 완벽한 상징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자로서의 고마코와 설국의 그늘진 아름다움 중에서 부정을 띄우는 하이쿠적인 번뜩임으로서 어울리는 주제를 보였던 것이다.

이 같이 섬세한 소설을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번역하는 것은 더욱 더욱 위험한 것이다. 근대의 일본문학 중에서, 일본어가 가진 불명료함을 이 정도로 잘 사용한 작품은 없다. 비교적 작은 예를 들자면, 그 회화의 성공은 일본의 글이 주어 없이 끝난다고 하는 것에 지워져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등장인물을 정체를 잃고 몹시 취했다고 하든가 주어를 확실히 하든가 어느 쪽이라도 해야 한다. 가와바타의 문장은 대단히 생략된 위에 일부러 얼버무려버린 것이 많아서, 역자는 거의 한 문장같이, 시의 번역자에게는 드물지 않은 예시의 문제에 부딪혀버린다. 그러니까, 원문에 손을 댈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몇 개의 의미에 달린 해석을 하나로 멋대로 정해버릴 것인가? 하는 것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얻은 나의 해결법이, 처음과 끝이 일관되어 있지 않은 것일까 봐 걱정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눈 앞의 번역이 어떤 의미에 있어 이리저리 굴린 임시변통한 것이다라는 것을 미리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영문의 소론은, 유네스코의 간청에 의해 된 《설국》의 번역의 서문으로서 쓰인 것이다. 일본의 독자에 있어서는 매우 잘 알 정도로 명백한 것이 쓰여 있어도 이 소론은 영역판의 서문인 채 번역되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러므로 이 자명한 소론은 '《설국》을 읽는다'라는 것이, 적어도 한 사람의 외인의 독자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정도는, 보이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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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국》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는데, 한국에서는 《신설국》이 유명하나 실제로 이 《신설국》은 가와바타의 〈설국〉과 모티브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작품이다. 영화 <신설국>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신설국〉의 작가는 사사쿠라 아키라(笹倉明)이다. 사사쿠라 아키라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00년에 그의 대표작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설국〉의 리메이크판 소설을 쓴 게 바로 〈신설국〉이다. 이 《신설국》 영화에서는 대한민국에서도 활동한 전력이 있는 일본 배우 유민이 여자 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의 관심은 작품 자체보다 유민의 노출 여부에만 쏠렸다. 그 덕분에 유민이 한국에서 눈물로 "그 작품은 AV가 아니다"라고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여담

<설국>의 배경이 된 니가타현은 실제로도 일본 최고의 다설지인데, 시베리아 기단에서 발생한 추운 북서풍이 동해의 수분을 먹고 건너온 다음 에치고 산맥을 타고 오르며 대량의 눈을 뿌리기 때문이다. 가와바타는 니가타현에 있는 유자와(湯沢) 온천에 머물면서 <설국>을 집필하였다. 작가가 머무르며 소설을 썼던 다카한 료칸은 서기 1075년에 개업하여 무려 947년의 역사를 가진 채로 여전히 성업중이며, 료칸 내부에 가와바타 야스나리 및 설국 관련 자료와 실제로 묵었던 방을 재현한 세트가 있는 자료관이 있다. 이 자료관은 숙박객이 아니더라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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