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노[ 能(능) ]

일본의 난보쿠조[南北朝]~무로마치[室町]시대에 성립된 극(劇) 이름.


익살스런 흉내를 기본 예능으로 한 사루가쿠[猿樂]를 공연하던 사람들이 ‘노’라고 하는 진정한 가무극을 공연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가마쿠라시대 중엽에는 이미 노의 전조로 보이는 가무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난보쿠조시대에는 각지의 사루가쿠자[猿樂座]가 노를 공연하였을 뿐 아니라 덴가쿠[田樂]의 연희자들도 같은 형식의 노를 연출하게 되었다. 전국의 사루가쿠 중에서도 야마토사루가쿠[大和猿樂]와 오우미사루가쿠[近江猿樂]는 특히 돋보였다. 14세기 중엽 야마토사루가쿠의 유사키자[結崎座]에 간아미쿄쯔구(觀阿彌淸次)의 출현으로 노는 일대 비약을 이루었다. 그는 흥미본위였던 야마토사루가쿠의 노에 덴가쿠의 장점과 오우미사루가쿠의 유미주의(唯美主義)를 섭취하여 장구한 생명력을 지닌 노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특히 당시 유행하던 쿠세마이[曲舞]를 노의 주요부분에 도입하여 음악 부분에서도 커다란 개혁을 이루었다. 그의 아들 제아미[世阿彌]도 뛰어난 천재였으며, 노를 한층 우아한 무대예술로 발전시켰다. 지붕이 있는 전용무대와 노멘[能面]이라는 가면을 사용하며, 각본 ·음악 ·연기 등도 독특한 양식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양식은 에도[江戶]시대에 들어서면서 도쿠가와[德川] 봉건제의 일환으로 편입되었고, 막부(幕府)의 의식예능(儀式藝能)이라는 틀로 고정되었다. 그리하여 에도시대의 노에는 무사도적인 색채가 농후하였으며, 예술로서의 완성보다 기백(氣魄)의 예리함 쪽이 중시되는 경향이었으나 본연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메이지[明治]시대에는 쇼군[將軍]과 다이묘[大名]의 원호에서 받은 영향으로 노는 한때 중단되는 듯 하였으나 귀족과 신흥재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고상한 취미라는 간판으로 다이쇼[大正] ·쇼와[昭和]의 융성기를 맞이하였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일본의 성씨

일본은 세계에서 성씨가 가장 다양한 나라 중 하나로, 현대 일본에는 대략 12만 3천여 종 안팎의 성씨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에서는 13만여 종~30만여 종이라는 추측도 있고, 성씨 연구가인 니와 모토지(丹羽基二)가 편찬한...

 
 
 

コメント


  • Facebook
  • Twitter
  • YouTube
  • Instagra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