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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유교발전의 시초, 수은 강항과 내산서원 [출처] 일본유교발전의 시초, 수은 강항과 내산서원|작성자 문화재청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는 내산서원은 조선중기 학자인 수은 강항을 배향한 서원입니다. 바로 이 수은 강항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유교(儒敎)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 수은 강항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강항(1567~1618)은 강희맹의 5대손으로 영광에서 태어났습니다. 22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27세에 병과에 급제하였습니다. 30세에는 공조좌랑을 거쳐 형조좌랑이 되었습니다. 형조좌랑에 임명 된 이듬해,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내려가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강항은 군량미를 모으고 의병을 모집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특히 그의 고향인 영광에서 의병을 모집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는데요, 일본 수군이 영광으로 올라오자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이순신 휘하로 들어갈 준비를 하던 중 일본의 수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교토의 후시미성에 연금된 강항은 이곳에서 평소 유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본 승려 후지와라 세이가를 만나게 됩니다. 강항은 그에게 조선의 과거제도와 봄,가을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에게 지내는 제사의례를 설명해줍니다. 후지와라는 조선의 의례복을 만들어 상장례의식을 익혔으며 이러한 배움을 바탕으로 일본에 새 유학을 일으켰습니다. 한편 후지와라는 강항의 일본 생활을 돕기도 하였는데요, 생활비를 마련해주기도 하였으며 강항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썼다고 합니다. 조선으로 돌아온 강항은 조정의 부름을 물리치고 고향에서 은거하며 학문에 힘썼습니다. 이러한 강항을 배향한 곳이 바로 영광의 내산서원입니다. 포로생활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일본 유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 학자 강항. 내산서원에서 그를 만나보세요.


<제11기 문화재청 대학생기자단 서승희 기자(gmlzx@naver.com)> [출처] 일본유교발전의 시초, 수은 강항과 내산서원|작성자 문화재청


원문링크: https://blog.naver.com/chagov/221538408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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